우리 민족의 의복은 역사 이래로 의복을 흰옷을 입어 왔습니다. 비록 국민의 전 인구의 극소수인 왕실, 귀족, 양반 계급은 관복으로서 오색 찬란한 중국의 비단을 입었으나, 민중의 대다수는 흰옷을 항상 입었습니다.

13세기 말엽으로부터 약 1백년 동안 왕실, 귀족, 특권층 일부만이 몽고의 정치적 압력하에 몽고 의복을 모방하였지만, 국민의 대다수인 농민, 공인, 상인, 어민 등 일반 민중은 항상 흰옷을 입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의복은 서기 14세기 경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몰래 구입해 들여와 재배함으로써 무명에 솜을 넣은 옷을 입게 되면서 크게 발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한복은 실사회 활동에 있어서 편리한 양복으로 대체되고 있지만, 개량한복과 같은 변형된 한복이 우리옷의 멋과 아름다움을 면면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신발은 의복과 함께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습니다. 현재는 운동화, 구두, 센들 등 대부분이 서구화된 신을 신지만, 우리 민족의 재래의 신에는 짚신, 삼신(미투리), 나막신, 가죽신, 헝겊신, 놋신(쇠신) 등이 있었습니다.


남자복식

남자복식은 저고리와 바지가 기본 복식입니다.

저고리는 삼국시대부터 통용되었는데, 형태나 구조의 변화가 그다지 없는 옷 중의 하나입니다. 바지는 양쪽으로 다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가랑이가 나누어진 형태의 하의를 말하는 것으로 기원전 1C-5C경부터 입어 왔습니다.

바지의 원형은 궁고(통이 넓은 바지)였고, 바지 부리 밑에 끈을 붙박이로 달아 바지 밑을 묶고 입었습니다. 그리고 대구고(통이 넓은 바지)는 통넓은 바지 부리를 끈으로만 처리하는 옷으로 활동하기에 불편한 경우가 많아 각반(발목에서부터 무릎 아래까지 감거나 둘러싸는 띠)이 생겨 이것으로 바지 아래를 매었습니다.

그러나 필요할 때마다 감는 것은 불편하여 아예 헝겊으로 정강이에 꿰어 위쪽에 달린 두 줄의 끈을 가지고 무릎 아래를 돌아 매는 행전을 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행전은 외출시 또는 활동복으로 습속화되었다.

조선 시대의 복식은 삼국 시대 이래의 복식 문화를 꽃피워 아름다운 한복 양식을 완성시킨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왕복, 왕비복, 백관복, 선비복, 서민복, 천인복이 정해지고 관혼상제복, 승복 같은 특수복이 제정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우리의 고유한 전통 복식은 고려 시대에 도입된 몽고풍을 소화하였으며 ,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고름이 생겼습니다.

이 때에 근세 한복의 전통 양식이 성립되었습니다.
영조와 정조 때에는 문화예술이 진흥하고 양반과 상민의 질서가 물란해지고 사치풍조가 겹쳐 우리옷의 미적인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권위와 여유가 있어 보이는 갓과 도포, 꼭 끼는 짧은 저고리와 풍만한 치마, 거창한 머리 모양 등이 등장하였습니다.



여자복식

여자복식은 저고리와 치마가 기본복식입니다.

저고리는 삼국시대의 것을 그대로 계승했지만, 깃, 도련, 소맷부리의 선이 고려 말에서 조선조로 오면서 삼회장저고리로 변하고, 조선후기로 와서는 저고리 길이가 짧아져 젖가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치마는 저고리에 비하여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다만 길이와 넓이가 쓰임새에 따라 변했습니다.

치마는 신분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하여, 양반 부녀자들의 치마 길이는 넓고 길었으며 치마에 금박을 놓은 스란단을 대었습니다. 일반 부녀는 민치마를 입었고 천민은 두루치라는 치마를 입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