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는 일반 대중 즉 민중의 실용적 요구로 인해 그려진 소박하고 꾸밈없는 그림으로 실내를 장식하는 데 이용 되었다. 따라서 민화는 필연적으로 인가의 생활과 밀착되어 생활공간과 사람을 하나로 맺어 주는 교량 역할을 하게 되었다. 생활 공간을 편안하고 아늑하게 때로는 훈시적으로 이끌어 주는 민화의 매력적인 역할 때문에 민화는 점점 더 많이 그려지게 되었고 실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생활화가 되었다.

민화는 풍자와 유머로 다른 사람에게 무언인가를 전달하려고 한다. 이는 우리 민족적 정서의 표현으로서 그 어느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회화 양식이다.

민화는 무의식적인 존재의 표출, 원시적 생명력에 호소하는 화법이나 독창법으로 현대 미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민화는 문인화관에 습관적으로 지배되어 온 화풍에 반발하고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로 주체적으로 작품을 완성해 현대인에게 자유로운 공감을 던져 주고 있다. 또 민화가 지닌 원시적이며 천진난만한 소박한 미감이 현대인을 휴식으로 이끌고 있다.



민화의 종류

산수도

민화는 대개가 채색되어 있으며 필법은 중국의 화법에 따르지 않고 주로 철선묘를 사용하고 있다. 금강산도, 관동팔경도, 소상팔경도, 그 밖에 실경산수도 등의 산수도도 이러한 표현을 따르고 있으며 다만 채색되어 있는 것이 다른 그림에 비해 적다는 정도이다. 팔경도는 어느 특정 지역의 풍경을 8장으로 엮어 병풍으로 만든 그림을 말하며, 실경산수도는 산수의 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 놓은 그림을 말한다. 이러한 산수도는 대개 손님들이 드나드는 사랑방에 병풍으로 세워지거나 장벽에 붙여졌는데 이 가운데에는 아주 환상적인 표현의 그림이 많아 주목받고 있다.

아름다운 산에 둘러싸여 살아온 한국인에게는 산을 경외하고 그 산의 한결같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염원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염원은 민화에도 수용되어 그시대 우리나라의 산의 모습이 많이 그려져 실내의 감상용으로 쓰여졌는데 이는 민화의 특성상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며 바람직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한국인은 방안의 병풍속에서 변하지 않는 산의 한결같은 모습을 즐기며 자연에 대한 믿음을 견고히 했던 것이다.




금강산도

금강산도는 산수화의 범주 안에 속하며 민화가들은 정선(1675~1759년)의 금강산 그림에서 크게 영향을 받아 그 이후부터 많은 금강산도를 그렸다. 정선은 실경의 특징을 압축한 표현등 그가 여행에서 받았던 인상을 쏟아 금강산의 우뚝 선 바위들을 마치 무수한 승려들이 서 있는 것처럼 표현하였느데 이러한 의인화된 표현이 많은 민화가들을 감동시켰던 것으로 여겨진다.

정선은 민화뿐 아니라 후세사가들이 말하는 정통회화에 잇어서도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으로서 암석들을 의인화시킨 독창적 표현의 선구자였다. 그는 구체적인 소재에서 마음내키는 대로 대상의 형태를 만들어 내는 작화적 태도를 지녔는데, 이는 민화를 이해하는데 하나의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이러한 정선의 작화 태도의 영향 때문인지 민화의 금강산도는 실재하는 산임이 분명한데도 현실적이기보다는 환상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화조도

민화 가운데에서 가장 수효가 많았던 것이 화조도이다. 화조도는 대개 꽃과 암수 한 쌍의 새를 어울리게 해서 그리는데, 예를 들면 한 쌍의 새와 모란꽃을 그려 집안의 풍요와 부부 화합을 염원하는 식이다. 그리고 더러는 순전히 꽃만을 그린 모란도, 현화도 등이 있으며 괴석, 물고기 등을 배합하여 그리는 경우도 있었다.

화려한 꽃병풍이나 희작이라는 까치를 그려 생활 주변을 장식하고 집안이 항상 화평하기를 바랐던 여인들의 모습이 얼마나 청초하고 화사하게 보였겠는가?

화조도는 보통 적, 청, 녹, 황 등의 물감으로 진하게 채색된 화려한 그림이다.




초충도

초충도는 나비, 메뚜기, 귀뚜라미, 매미, 개구리 등을 주로 가을의 풀과 어울리게 하여 그린 것으로, 대개는 병풍으로 꾸며져 안방을 장식하였다.

초충도를 처음 그린 사람은 사임당 신씨이다. 사임당 신씨는 추초, 포도, 벌레 등을 어울리게 하여 그림을 그렸으며 이는 민화에도 영향을 주어 꽃과 새가 어울리듯 여러 풀벌레들이 꽃이나 풀과 어우러진 민화를 낳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화제는 그 당시 백자의 표면화로도 응용되었다.

신사임당의 그림 그리는 태도는 그림의 소재를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있는 것들 가운데서 선택하였다는 점에서 민화적 특성과 잘 부합되는데 이는 공상적인 소재를 주로 다루었던 당시 화단으로서는 획기적인 일이 아닐수 없었다.
호표도

호표도의 호랑이들은 앉은 자태가 아주 경쾌하고 그 얼굴은 호랑이로서의 무서움이 아니라 우습고 친근하며 매우 해학적인 표정들이다. 민화 속의 호랑이들의 고양이 같은 몸매와 익살스럽고 우스운 표정은 호랑이에 대한 한국인의 애정을 담고 있다.

진주호랑이

이 그림은 못생긴 호랑이지만 새끼가 세마리씩이나 달린 위엄있는 자세를 하고 있다. 이 호랑이를 그린 신재현은 언제 태어나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는 무명화가이다.

다만 같은 작품이 진주 일원에서 몇점 발견되어 이 그림을 진주 호랑이라 부른다. 떠돌아다니며 정초에 문배 그림이나 민화를 그려 주었던 서민층 화가의 냄새가 물신 풍긴다.


풍속도

풍속도는 경직도와 평생도가 주를 이루고 있다. 경직도는 농사짓고 베짜는 농촌 풍속이 화제이며 세종조 변계량(1369~1436년)의 [유풍무일도]가 경직도의 시초로 알려지고 있다. 평생도는 나서부터 죽을때까지의 일생을 그린 것으로 부로 규범적인 선비의 일대기를 기록화 형식으로 꾸민것이 많다.

특히 과거에서 장원 급제하여 어사화를 꽃고 행차하는 모습은 절정을 이루는 장면으로서 매우 유교적인 정경을 담고 있다.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병풍에 그림으로 그려넣어 후손으로 하여금 그림속의 선비를 본받게 하려는 의도에서 평생도가 그려진 것 같다.


문방도

서적을 위주로 종이, 붓, 벼루, 먹 등 문방사우와 선비들이 일상 쓰는 화병과 꽃, 필통, 과일, 등잔, 도자기, 부채, 안경 등이 화려하게 그려졌다. 책이 귀하던 시절에 책을 늘 곁에 두고 싶었던 선비의 염원이 담긴 그림이고 또한 문방도를 봄으로써 글공부를 좋아하고 적극 권장했던 당시 생활의 일면을 볼 수 있다.

문자도

문자회는 표의 문자인 효, 제, 충, 신, 예, 의, 염, 치의 여덟 글자를 여러 가지로 변형하고 글자의 안과 획에 그 뜻에 관계되는 유교의 핵심 사상과 윤리관을 나타낸 그림을 넣어 8곡 병풍으로 꾸민 것이다. 주로 화려한 색을 사용하여 그렸고 더러 유성 물가므올 그리기도 한다.

비백회

비백은 문자회의 일종으로 글씨의 일부 획에 검은선과 흰선이 속도 있게 서로 어울려 쓰인 글씨 그림을 말한다.

사신도

우리나라에서 사신도가 처음 그려진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로서,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네 동물이었고 시대가 내려오면서 차츰 현실적인 동물 모습 곧 용, 호랑이, 닭 또는 봉황, 거북의 모습으로 그려졌고 주로 악귀를 쫓는 벽사의 부적으로 사용되었다.

십장생도

불로장생하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십장생도이다. 장수의 상징인 해, 달, 구름, 물, 돌, 사슴, 거북, 학, 소나무, 불로초 등을 화려한 색을 써서 그린 그림이며, 표현도 매우 우수한 것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