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김약국의 딸들>


김성수의 생모인 숙정은 함양땅에서 김봉룡에게로 시집을 왔다. 시집 오기 전에 그녀와 혼담이 있었던 욱이 숙정을 잊지 못하여 병까지 든 몸을 이끌고, 김봉룡의 집으로 그녀를 찾아 오는 데서, 이 집안의 파멸과 파란의 긴 역사는 시작된다.

마당 한 가운데에서, 돌아가라고 성화를 대는 유모 앞에서 애절하게 사정하던 욱은, 숙정의 남편인 봉룡과 마주친다. 전처를 때려 죽였을 것이라고 소문이 나 있는 난폭한 봉룡은 , 이로 인해 숙정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도망친 욱을 찾아 도륙을 내고 집으로 돌아온다. 결국 숙정은 비상을 먹고 죽고, 봉룡은 형이 마련해준 노자를 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김성수의 어머니 숙정의 불행한 생애와 함께, 김약국의 아내 한실댁도 첫아들 용환이를 잃어버리는 것을 시작으로, 그녀의 다섯 딸들의 비극적인 삶을 연쇄적으로 겪게 된다. 그녀는 딸들에게 모든 희망과 기대를 걸고 살아가지만, 첫째 용숙과 셋째 용란은 한실댁의 운명을 최악의 상태로 만든다.

둘째 용빈은 혼담이 어긋나지만, 자신의 일을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지성과 능력이 있어 한실댁의 위안이 된다. 네째 용옥은 언제나 말이 없이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비록 불행한 결혼 생활 속에서도 친정 일을 도와 주고 있다.

통영에서 사라졌던 한돌의 등장으로 셋째딸 용란은 한실댁에게 근심과 걱정이 가실 날이 없을 만큼 걱정과 부담을 안겨 준다.

용란은 찾아 온 한돌과 다시 관계를 갖고, 성불구자인 그녀의 남편 최연학이 경찰서에 들어간 사이 따로 방을 얻어 동거까지 하게 된다. 용란과 한돌을 도저히 떼어 놓을 수 없다고 판단한 한실댁은 둘째딸 용빈 몫으로 챙겨 두었던 패물을 싸들고 그들이 동거하는 집으로 갔다가, 때마침 경찰서에서 나와 미쳐 날뛰는 최연학을 만나게 되고, 결국 그녀는 사위인 최연학이 휘둔 도끼에 목숨을 잃고 만다.

한실댁의 시어머니가 남자관계로 목숨을 잃은 것처럼, 그녀는 잘못 둔 딸의 치정에 연루되어, 그녀의 시어머니이며 남편 김성수의 생모인 숙정처럼 비명에 간 것이다. 결국 김약국의 딸들은 엄청난 비극을 연쇄적으로 겪는다. 맏딸 용숙은 과부가 되었다가 간통을 하고 그 간통으로 생긴 아들을 죽인 혐의로 감옥으로 가게 되었고, 둘째딸 용빈은 사랑의 배반을 당하고 구속되었다.

셋째딸 용란은 성불구자인 최연학의 아내가 되었지만, 결국 한돌과의 부정으로 남편에게 죽임을 당하고, 넷째딸 용옥은 철면피한 시아버지와의 사고로 죽고 만다.

작가 박경리는 운명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간과 삶의 괘도를 결정하는 힘으로, 특히 한 집안의 내력과 관련지음으로써 그것의 불가항력성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