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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 1931 - )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로 1970년 <<여성 동아>> 에 장편 소설 <나목> 이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 했습니다. 대표 작품으로 <도시의 흉년>, <휘청거리는 오후>,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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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뚝>
5남매의 어머니인 [나]는, "나만 없어 봐라. 집안 꼴이 뭐가 되나."하는 식의 안주인이다. 이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불상사들이 하나같이 [내]가 집을 비운 사이에 일어났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다 자라고 아파트로 집을 옮기게 되면서, [나]로 하여금 집안에서 일어나는 사고에 대한 타성화된 섬뜩한 느낌에서 차츰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 농장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섬뜩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내가 여지껏 경험한 섬뜩한 중에서도 최악의 것이었는데 친정 어머니가 폭설로 미끄러운 빙판 길에서 넘어져 중상을 입었다는 전갈로 현실화된다. 병원에 입원한 친정 어머니는 처음에는 완강하게 수술을 거부했다. 결국장시간의 수술끝에 병실로 돌아온 어머니는, 비정상적인 강단과 근력을 보이다가 정신 착란 증세를 일으킨다. 어머니는 효성이 지극했던 아들이, 실어증에 걸린 데다 유혈이 낭자한 채 비극적으로 죽어간, 한 맺힌 일들을 다시금 그 착란 증세 속에서 되살리고 있었다. 6.25전 오빠는 한 때 좌익 운동에 가담했다가 전향한 적이 있었다. 때문에 오빠는 적 치하의 서울에서 불안하게 살고 있었다. 오빠는 전향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도덕적 열패감에 괴로와했다. 또한 그는 수도를 포기하고 한강을 건너가 버린 정부에 대한 불신과 원망, 고독으로 몸부림쳤다. 그런 오빠는 이웃의 고발로 끌려 갔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인민 궐기 대회에서 제일 먼저 의용군에 지원하였다. 이로 인해 어머니와 나는 혜택을 누렸었다. 그러나 석 달 만에 세상이 바뀌자, 우리 집은 빨갱이 집으로 지목되었고, 이웃의 극심한 박해가 뒤따랐다. 1.4후퇴로 인해 오빠는 돌아오고 피난이 어렵게 되자, 어머니는 서울에 와서 처음 말뚝 박은 산비탈 동네로 은신처를 옮겼다. 그러나 은신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인민군이 들어닥치고 오빠는 실어증 증세를 보였고, 인민군은 오빠의 신분을 캐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이후 오빠는 어머니의 거짓말대로 정신적 불구자가 되어 가고 다시 후퇴하는 인민군 보위 군관에게 총살을 당한다. 어머니는 오빠의 시신을 화장시켜 이북 고향 개풍군 땅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바람에 날려 보냈다. 그것은 어머니를 짓밟고 모든 것을 빼앗아 간 6.25의 비극과 분단에 홀로 거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아직도 투병 중인 어머니는 오빠의 화장과 똑같은 방법의 사후 처리를 [나]에게 부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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