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 1948 - )

1977년 <<매일 신문>> 신춘 문예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 가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대표 작품으로 <사람의 아들>, <금시조>, <젊은 날의 초상> 등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나는 자유당 정권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던 그 해, 공무원으로 있던 아버지가 된서리를 맞는 바람에, 어느 적은 읍의 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첫날부터 반장인 엄석대와 불편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엄석대는 묘한 힘으로 급우들을 지배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생리에 맞지 않는 나는 부당하고 불합리한 사고 방식에 대하여 실망을 하게 된다.

그의 비행을 선생님에게 이야기하나, 담임 선생님은 엄석대를 지나치리 만큼 신임을 하고 있는 터라, 번번히 내게 돌아오는 것은 곤혹스러움 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굴하지 않고 엄석대의 위치에 도전을 하나 소외만 당하게 된다. 결국 나는 엄석대에게 복종을 하게 되고, 엄석대의 보호를 받게 되어 편하게 된다.

그러나 새 학년이 되고 담임 선생님이 바뀌게 되자, 새로운 .선생님의 철저한 교육 방식에 의하여 엄석대의 굳건한 성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엄석대가 자신의 시험지를 우등생들로 하여금 작성하게 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자, 그는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만다.

그 뒤 나 역시 일류 학교에 가기 위하여 시험과 경쟁 속에 파묻혀 그에 대한 기억들을 묻혀 버리고 만다. 그러다가 실업자가 된 후에 석대와 그가 이루던 무언의 질서들을 생각하며 아무 노력 없이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그 때를 그리워 한다.

그런데 어느날 수갑을 찬 석대의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나는 어린 시절 영웅 같았던 석대의 모습이 아닌, 바로 그에게 복종하고 무력했던 자신들 중의 하나와 같은 모습을 보게 된다. 그날 밤 나는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누구를 위한 울음인지도 모르는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