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의 자리에 선 한국 음악계의 자존심
정명훈 (1953- )


정경화, 정명화와 함께 정트리오로 먼저 알려진 정명훈이 지휘자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196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시민보카네트라' 로 데뷔한 때 부터 입니다. 1974년 미국 메네스 음대 유학생인 한국인 정명훈이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실질적인 우승을 했습니다.
이 때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는 정명훈을 2위로 선정했다는 이유로 세계 음악계의 빗발치는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피아노에 만족하지 않고, 줄리어드 음대에서 다시 지휘를 공부하면서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에게 발탁되어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니의 부지휘자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 때가 26세인 1980년 이었습니다.


그는 1983년 이후 베를린필하모닉, 뮌헨 필, 파리 오케스트라 등의 객원 지휘자 및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의 음악 감독 등을 역임했습니다. 1984년 유럽의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와 1987년 이탈리아 피렌체 오페라 오케스트라 수석,객원 지휘를, 바스티유 오페라 오케스트라 수석,객원 지휘를 거쳐 1989년 5월 25일, 프랑스 최고의 오케스트라임을 자랑하는 바스티유 오페라 오케스트라에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 그는 바스티유 내의 단원들뿐 아니라 프랑스 음악계를 감탄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1994년 프랑스의 보수성과 정계 좌우파 싸움의 희생양이 되어 5년 만에 바스티유에서 퇴진했습니다. 음악가들은 한결같이 이 일을 두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프 랑스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그는 프랑스 음악의 탁월한 해석가 답게 깊이있고 신선한 감각으로 무장, 세계의 주목받는 지휘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는 1991년부터10개년계획으로 UN이 마약퇴치를 위한 범세계적 운동으로 추진하고 있는, 마약퇴치 운동을 이끌어 나가는 '유엔 마약 대사제 '의 초대대사로 임명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