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나폴레옹을 종신 통령으로 선출한 프랑스 국민(1802년 - 파리)
종신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국민투표에 이어 오늘 상원에서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종신 통령'으로 선포하였다. 국민투표에서 프랑스 국민 3백 5십만명이 이 안에 찬성을 표시하고 겨우 8천 명이 반대를 하였다. 나폴레옹(국민투표에서 처음으로 이 이름이 사용되었다)은 이제 왕과 똑같은 권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죄인들에게 사면권을 내리고 자신의 후계자를 스스로 지명할 수 있는 제왕의 특권을 그에게 부여할 새 헌법이 제정중에 있다. 하원에서의 의회 토론에 우선하는 효력을 가진 법령 포고와 시행 권한을 상원에 부여함으로써 나폴레옹이 휘두를 권력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나폴레옹에 대한 지지도가 이렇게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분명히 군주제를 폐지시킨 10년 전 그날의 혁명의 열정을 도로 반납하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파악하고 망명중에 있는 루이 18세는 군주제를 복원시키고 자 나폴레옹에게 제안을 하였다. 나폴레옹은 분명하게 거절하였다. "프랑스로 돌아오려는 것은 꿈도 꾸지 마시오. 만일 돌아온다면 10만의 시체를 밟고 넘어야 할 것이오."

로마 교황과의 종교 협약(로마 교황 피우스 7세와 맺은 화약. 이 협약에 따라 카톨릭의 승려는 나폴레옹 정부를 지지할 의무가 생겼다)과 아미앙 평화 조약(북프랑스 솜 강변의 도시에서 맺은 프랑스와 영국의 강화 조약)을 통하여 이미 나폴레옹의 인기는 상승하였고 그 인기를 이용하여 나폴레옹은 임기가 만료된 정적들의 재임명을 거부하여 호민관과 입법의회 '숙청' 작업을 단행하였다.

자기 방위의 수단으로서 상원에서는 투표를 하여 나폴레옹의 제1통령의 지위를 10년 더 연장시키기로 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종신 통령으로 선출하려고 국민투표를 명령하였다. 그러나 의미심장하고도 중대한 사실은 그에게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대부분이 군인들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