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 | |
정적을 숙청하는 스탈린(1934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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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수석 고문이던 세르게지 커로브의 암살 사건 이후 스탈린 정부에 의해 숙청당
한 희생자 수가100명이 넘고 있다. 볼셰비키 당원이자 지난 8년 동안 레닌그라드 지부
위원회의 서기장직에 있던 커로브는 지난 12월 1일 레닌그라드 공산당 본부에서 총에 맞아
살해당했다. |
'대담하고 열렬한 혁명가'라고 찬양받고 있던 커로브의 죽음을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적인 반동자들의 손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라고 분개하고 있으며 이미
정부는 레오니드 니콜라에프라는 이름 외에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청년을 살해범으로
체포하였으며 곧 재판에 회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암살 사건 직후 스탈린은 이 사건을 정부를 전복하려는 혐의가 있는 인사들을 숙청하는 구실로 삼기 시작했다. 사건이 발생한지 일주일 후에는 이미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 지역에서 66명의 인사가 '백위(白衛) 폭력단' 이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즉시 비공개 처형당했으며 열흘 뒤에는 또 27명의 인사가 체포되어 총살형에 처해지는 한편 전국제 공산당 의장 그리고리 지노비에프 그리고 <프라우다> 신문 편집장 레브 카브메네프도 커로브 암살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되었다. 100,000명이 넘는, 고도로 기강이 잡힌 소련 청년단원들이 '붉은 군대'를 지원하는 그들의 결의를 다짐하는 집회를 가진 후 그들의 상징인 5개의 별에 둘러싸인 망치와 낫의 모양으로 붉은 광장에 도열하기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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